2008년 05월 25일
<나는 펫>과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리얼’하게 보는 방법
어릴 적 내 친한 친구는 중학교를 입학할 때까지도 프로레슬링을 즐겨보곤 했었다. 함께 헐크호건과 워리어에 열광하던 동창들이 SES와 스타크래프트로 넘어가도, 그 친구는 홀로 근육질 형님들의 세계를 꿋꿋이 지키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에서 각자 연마한 기술들을 직접 써먹고 선수들 이름을 줄줄 외우며 열광하던 친구들은 왜 갑자기 프로레슬링을 멀리하게 되었던 것일까? 당시 언제부턴가 우리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본 건 모두 다 가짜다!’라는 충격적인 소문이 괴담처럼 돌기 시작했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배신이란 감정을 느낀 여린 동심들은 프로레슬링에 대한 무한 거부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에게 프로레슬링을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의 유치함을 커밍아웃해야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우린 그렇게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가게 되었다.
하루는 케이블이 설치된 그 친구의 집에 가서 TV를 보다 Undertaker가 나오길래 “너 요즘도 WWE보냐? 그거 다 짜고 하는 거잖아”라고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친구 왈 “그럼 넌 드라마는 왜보냐, 다 짜고 연기하는 건데”라며 나의 짧았던 생각에 어퍼컷을 날려줬다. 모두가 WWE를 연기가 가미된 가짜 ‘스포츠‘라고 인식할 때 내 친구는 스포츠가 가미된 허구의 서사로 레슬링을 봐왔던 것이다.
True "Fiction"
<나는 펫>을 본다는 것, 혹은 여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본다는 것은 프로레슬링을 본다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만약 당신이 ‘100% 실제!’같은 문구나, 출연자들의 감정을 설명해주는 자막들에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갖는다면 이미 게임의 기본 룰을 모르고 경기에 들어선 것이다. 당신이 바라는 ‘진짜‘ 동거 생활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의 욕망과 판타지들로 에피소드를 만드는 작가들과 연기자, 제작진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이라는 잣대에서 벗어나는 순간,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나오는 미국드라마와 같은, 일일 시트콤의 에피소드 같은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나는 펫>에서 출연자들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항상 미세하게 흔들린다. 어깨에 들고 찍어서 조금씩 흔들리는 화면과 가끔씩 시도되는 줌인 기법은 출연자들과 같은 방에 있는 카메라맨의 존재를 인식시킨다. 이렇게 우리가 훔쳐본다고 착각하는 동거 생활이 실은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부터 우린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읽을 수 있다.
프로레슬링은 몇 년 전부터 "Do not try this at home"이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들 스스로 이것은 쇼이고, 짜여진 각본에 의한 연기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게임은 재미있다. 경기 전 라커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나 경기장 밖에서의 갈등관계들은 경기의 재미를 배가 시켜준다.
<나는 펫>을 보는 재미도 여기에 있다. 공감할 만한 사건들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에게 관심을 갖는 순간, 당신은 각본에 의한 ‘가짜’ 리얼리티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외피를 두른 '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P.s - 다음주부터 시즌4를 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케릭터나 커플관계가 많이 식상한 것같다. 변화가 좀 필요하다.
# by | 2008/05/25 16:31 | TView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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